우리교회에 채소 도매상을 하는 분이 얼마 전 상추를 보내왔다. “목사님, 우리 집 옥상에서 키운거니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아니 채소가게 하시는 분이 왜 옥상에서 키워요?”“아휴 목사님도! 요즘 세상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어딨나요?”농약과 공해등으로 인해 안심하고 먹을 게 없다보니 자기가 먹는 채소 만큼은 농약치지 않고 직접 재배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유기농 채소를 직접 재배하여 먹는다는 것이다.
  농약친 채소는 벌레도 없을뿐더러 윤기가 흘러 보기도 좋다. 반면에 유기농 채소는 벌레가 덤비기에 파먹은 흔적이 있어 볼품 없다. 그러나 건강 식자재이기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젊은시절 내가 사역했던 선교지는 음식만큼은 안심하고 먹어도 되었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지 않으므로 거의 모든 먹거리가 안전한 식품이라 보면 되었다. 껍질채 한입 가득 베어 먹던 사과 맛에 얼마나 행복하던지!
 
  내 친구 목사님 중에 이러한 유기농 목사가 있다. 농사짓는 목사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보여준 그분의 신앙 인격이 가식으로 치장하지 않은 유기농 인격체이다. 농약을 치고 살면 좀 더 편하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 갈 수 있는데도 그는 순수함 그대로의 모습으로 일관되게 살아왔다. 그는 15년에 걸쳐 3개국을 드나들며 4번에 걸쳐 선교사로 헌신하였는데 가까운 동네에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언어와 국경을 초월하여 움직이는게 보통일이 아니다. 한곳에서 뿌리 내릴만하면 명령 따라 옮기고, 뿌리 내릴만 하면 또 옮기고... 그러길 4번이나 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쉬운일이 아니다.
  자녀교육 문제도 있고 변화된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는 일이나 새 임지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데, 그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순종의 자세를 일관되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를 유기농 목사라고 부른다. 그를 볼 때마다 「순수」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안심해도 되는 인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도 나를 보고 같은 표현을 쓰지만 나는 그런 자질이 전혀 없다.
 
  요즘은 황사다 미세먼지다 하여 사방천지에 공해가 가득하다. 세속이라는 공해독도 교회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신앙을 포장한 모습만 보인다. 사명보다 요령이 앞서면 주의 종은 직장인으로 전락한다. 성실보다 아부가 앞서며, 겸손보다 카리스마를 가장한 난폭한 리더십이 판치는 현실이다. 미소띈 얼굴이 성인군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도 있고 목자의 지팡이를 든 도둑도 있다. 진짜와 가짜를 고르기가 공해 없는 먹거리 구별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세상이다. 농약친 채소야 윤기가 흐르지만 유기농 채소는 벌레구멍이 숭숭 나 있으니 판단이 흐릴 수 밖에 없다.
 
  바른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공해에 찌든 세속의 독소를 말씀과 성령으로 씻어내야 한다.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위선과 가식으로 포장되지 않은 마음, 그것은 유기농 마음이다. 130년전 초기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유기농 이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
  유기농 목사님, 그분을 떠올리면 난 기분이 맑아진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분의 이름을 나타낼 수 없다. 벌레들이 덤벼들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이런 친구들이 여럿 있다.
 
아! 이런 유기농 목사님이 가득 찬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2015-07-24
김봉준 목사(아홉길사랑교회 담임)